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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치를 청취

노회찬

by 달성 2022. 7. 21.

"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,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"

- 손석희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중

 

 

 

 

제가 학교에서 몇 푼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어 번 저의 수업시간에 초대했습니다. 솔직히 말씀드리자면 처음에는 저도 요령을 부리느라 그를 불러 저의 하루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. 저의 얕은 생각을 몰랐을 리 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. 그리고 다음 해, 또 그 다음 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습니다.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. 노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.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.

 

제가 그를 속속들이 알 수는 없는 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,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 같은 사람이었습니다.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 브리핑에서 저는 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.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 저였다는 것 등등. 그러나 그것은 어찌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 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 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.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 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, 다른 세파에 떠밀려서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.

 

"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..." - 오세훈

 

거리낌 없이 던져놓은 그 말은 파문에 파문을 나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,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, 혹은 제 인식을 생각해 냈던 것입니다. 즉, 노회찬은 돈 받고 스스로 목숨을 끊은 사람이 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.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 줄 수 있다는 것.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.

 

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.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.

 

-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브리핑 전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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